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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에 대한 이야기/학교동아리활동 이야기

2-2. 고마운 사랑의 열매

by 오랑쥐 2021. 5. 16.

Part.2 동아리활동이란

  2-2. 고마운 사랑의 열매

 

‘사랑의 열매를 아시나요?’

 

연말이면 사람들의 가슴에 달리는 그런 작고 빨간 열매가 있다. 바로 사랑의 열매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라는 단체에서는, 매년 사회의 어둡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모금과 기부활동을 하고 있다. 나는 대학생 시절, 사랑의 열매와 맺은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대학 시절 야간학교 동아리활동을 했다. 이름은 등불야간학교였다. 2년간 활동하면서, 마지막 6개월은 대표를 맡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다른 동료들에게 나는 교장선생님으로 통했다. 그래도 역사가 있다 보니, 그것도 45번째 교장이었다. 당시 우리 야학에는 믿음반(한글반), 성실반(초등과정), 명랑반(중등과정), 사랑반(고등과정) 이렇게 4개 반이 있었다. 15세부터 70세까지 학생의 연령은 다양했고, 대부분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청소년기를 방황하며 학업을 중도 포기한 학생들이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다 그렇게 되는가 보다. 교장으로서의 사명을 지키고, 발전된 야학을 만들고자, 나는 이것저것 할 일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레이더망에 걸린 것이 사랑의 열매였다. 처음으로 공모라는 것에 도전해 보았다. 그것이 바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사업이었다.

 

당시 야학에는 컴퓨터가 1대 뿐이었다. 늘 수업이 시작될 시간이 되면, 인쇄하느라 컴퓨터 1대는 쉼 없이 분주하게 돌아갔다. 간혹 그 컴퓨터가 멈춰서는 날이면, 교사들은 수업을 판서와 말로 때울 수밖에 없었다. (옛날 컴퓨터는 잔고장이 참 많았다.) 그리고 컴퓨터가 대중화되면서 우리 야학 학생들에게도 IT교육이 필요했다. 나름 앞서가는 교육을 하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총 400만원을 지원해 달라고 신청서를 냈다. 10쪽 정도 분량의 계획서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글도 많이 적어야 했고, 사진도 많이 찍어서 넣어야 했다. 처음 해 보는 도전이라 그런지 계획서를 작성하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한 줄, 한 문장 꼼꼼히 심사숙고하며 작성했다. 심혈을 기울였던 탓일까 지원대상자로 덜컥 선정되었다. 첫 도전에서 얻은 성취가 야학 가족들 모두에게 큰 기쁨이었다. 날아갈 듯이 기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서 우리 야학에 컴퓨터실이 탄생하게 되었다. 총 4대가 들어왔고, 프린터기도 새로 바꾸었다. 컴퓨터 수업시간도 생겼고, 윈도우와 한글 프로그램 사용법을 교육하게 되었다. 성공 경험은 또 다른 도전을 하게 하는 법인가 보다. 나는 대학생사회봉사협의회와 삼성에서 주관하는 공모사업에 또 도전하게 되었고, 연이어 합격했다. 자원봉사 워크숍에도 참석하여 자랑스럽게 우리 야학의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나는 작은 동아리였지만, 리더의 자리를 통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다. 물론 All-F라는 뼈아픈 학점을 남겼지만 말이다. 난 그래도 후회하지 않는다. 학점보다 더 훌륭한 경험과 성장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도 우리 야학은 계속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복사기, 온돌매트 등을 연이어 지원받았다.

 

지금은 빛이 바랜 추억이 되어 버렸지만, 교장으로 있던 6개월은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웠던 시절이었다. 다툼과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구성원 모두가 협력할 수 있도록 중립을 지킬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누구보다 고민이 많았다. 야학의 미래를 고민하면서 술도 많이 마셨던 것 같다. 젊기 때문에 순수했고, 느끼고 경험한 모든 것들이 풋풋했다.

 

야학 자금 마련을 위해 길거리 모금활동도 해 봤고, 바자회도 열어봤다. 어린이날이나 정월대보름이면 군청의 요청으로 행사도우미로 활동하기도 했고, 문예회관에서 학예발표회를 열고 야학 가족들과 친목을 다지기도 했다. 소소한 추억이 있었고, 교사로서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뚜렷한 교직관을 가지는 기회가 됐다.

 

내가 지금 동아리 활동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책까지 펴내는 것은 내게 동아리활동을 통해 얻는 소중한 경험들이 있기 때문이다. 동아리 활동을 통해 경험하고 느낀 것은, 지금도 내 사고방식의 뿌리가 되고 근간이 되고 있다. 지금 내가 매우 열정적이고 도전하는 선생님이 된 것은 야학 동아리 활동을 통해 얻은 감동을 잘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통해 변화되는 것을 보았고, 나와 함께 학교가 변하는 것을 보았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보다 어린 나이에 동아리를 경험해보길 권한다. 선생님 주도의 피동적인 활동이 아닌, 능동적인 그런 활동을 말이다. 스스로 기획하고, 협력하고 도전하면서 그렇게 말이다.

 

 

2013년에 작성된 글임을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