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세이] 도전과 실패를 허용하는 학교가 되어야
‘그래핀을 한국에서 연구했다면, 실패했을 겁니다.’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그래핀을 개발한 미국 컬럼비아대의 김필립 교수가 한 말이다. 그래핀은 탄소원자 6개가 육각형으로 배열되어 있는 2차원의 얇은 물질을 말하는데, 전기가 잘 통하며, 강하고도 휘어지기 때문에 최근 ‘꿈의 신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이것을 개발한 세계적인 과학자인 김필립 교수는 얼마 전 개최된 '한·미 과학자 대회'에서 한국의 문화에 대해 큰 아쉬움을 표현했다.
‘한 번 실패하면, 실패자로 낙인 찍혀 다음에는 연구비조차 받기 힘든 한국의 문화가 바뀌어야 합니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우리의 문화는 과학자들로 하여금 도전적인 연구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실패가 두렵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이 높은 연구만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도 공학 석사과정을 겪으면서 느낀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대학이나 연구기관의 대부분이 돈 되는 연구만을 하고 있으며, 성공에 집착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진짜 위대한 혁신은 수없이 많은 실패를 딛고 탄생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우리는 도전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문화를 따르고 있는 게 현실이다.
‘대학에 떨어진 나는 실패자야. 난 경쟁에서 떨어진 낙오자야!’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문화는 우리 교육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대학 입시라는 경쟁에서 이기면 성공한 사람이 되고, 경쟁에서 밀리면 실패자가 되는 것이 바로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나도 목표했던 의과 대학 진학에 실패하면서, 고등학교 졸업식장에서 조용히 구석을 지키다 나올 수밖에 없었다. 고교 졸업식은 마치 명문대에 진학한 사람들을 위한 잔치같았기 때문이다. 명문대를 진학한 학생은 많은 상을 받게 된다. 높은 분들이 앞 다투어 학교와 지역사회의 명예를 드높인 그 학생을 격려하고 공을 치하한다. 그러나, 더 많은 학생들은 실패의 그늘에 가려 쓸쓸한 졸업을 맞이한다.
비록 과장하기는 했지만, 이게 지금 우리 학교의 아픈 현실이다. 학교는 대학 입시에 사활을 걸고, 에너지와 자본을 최대한 집중한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성공은 자연스럽게 보장되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대학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근무해봤지만, 행복과 인생을 말하는 선생님은 거의 없었다. 오로지 대학 진학이 인생을 걸어야 할 절박한 과제일 뿐이라고 말한다. 몇 점을 더 맞아야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있으니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모두들 대학 진학이 인생 최종의 목적지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걸까? 진짜 인생은 대학부터 시작인데 말이다.
한·중·일 청소년의 생활을 비교한 연구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청소년의 독립성과 결정성이 최하위라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자신의 진로가 무엇인지, 꿈이 무엇인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 청소년의 진짜 모습이다. 대학 졸업생 70% 이상이 자신의 전공과 맞지 않는 분야에 취업을 한다고 한다. 취업 후 이직률도 70%가 넘는다고 한다. 도대체 왜 우리 청년들은 이토록 선택에 실패하는 것일까? 왜 방황하게 되는 것일까? 대학 입학만 생각했지, 대학 이후의 삶은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에서 어떤 공부를 해서 무엇이 되겠다고 하는 목표가 없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부터 진로를 고민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나타나는 결과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33%만이 행복하다고 한다. OECD 국가 중에 국민 행복도 최하위 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는 과연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 묻고 싶다. 과연 우리가 행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행복한 학창시절을 보냈는지 말이다.
우리나라 학교들은 '행복'이라는 큰 가치를 놓치고 있다. 명문대 입학을 위해 학창시절 청소년들의 행복은 보류되고, 대학 이후로 미뤄진다. 어찌 행복을 미뤄둘 수 있는 것이던가? 세계 청소년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은 이런 왜곡된 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대학 입시가 전부였던 아이들에게 실패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나 다름없게 되는 것이다.
이제 학교는 학생들의 행복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대학 진학 이후에 취업의 관문에서 방황하지 않도록 멀리 내다보는 교육을 해야 한다. 아이들이 행복하고 즐기면서 대학입시를 준비할 수 있는 문화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물론 모든 학교들이 서로 경쟁하고 있기 때문에 누가 먼저 기존 시스템을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바람직한 가치를 설정해 가면서 서서히 바꿀 노력을 해야 한다.
지금 학교에는 동아리 활동과 진로활동이 도입되어 있다. 아주 훌륭한 대안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미리 직업세계와 학과를 체험하고, 선택에서 실수하지 않도록 하는 예방약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혁으로 가는 길은 너무 멀다. 현재 동아리 활동과 진로활동을 파행적으로 운영하는 학교가 많기 때문이다. 대충 떼우는 시간 정도로 생각하는 관점을 바꾸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성공이란 수많은 실패 후에 찾아온다. 그리고 실패 뒤에 찾아오는 성공이 더욱 값진 법이다. 아이들이 청소년 시절, 다양한 도전과 경험을 통해 선택에서 좌절하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학교는 대학 입시만을 목표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경험할 것을 설계하고, 도전하도록 장려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2013년에 작성된 글임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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