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3 왜 동아리활동인가?
3-1. 1명이 주인공이면 99명이 들러리일 뿐이다
‘1명이 주인공이면 99명은 들러리일 뿐이다.’ 한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한 엄마의 푸념이다. 1년간 어머니회 활동을 활발히 하던 한 어머니는 나와 상담하는 자리에게 이런 불평을 늘어놓았다. 학교가 도무지 자기 자식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어머니의 아들은 200여명 중에 80등 정도를 하는 그런대로 공부 좀 하고 노력하는 학생이었다. 어머니 얘기에 따르면, 중학교 다닐 적에 전체에서 1~2등을 빼놓지 않고 했다고 한다. 물론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에 마음이 불편해서 하는 푸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실상은 학교와 지역사회에 문제가 있었다.
인문계 고등학교들의 가장 큰 관심은 명문대 진학률이다. 그 중에서도 서울대를 몇 명 보냈는지는 예비고등학생을 둔 부모의 가장 큰 관심거리다. 얼마 전 한 신문사에서 서울대 진학 숫자를 가지고 학교서열을 기사화한 적이 있었던 것처럼, 서울대 진학률은 예비수험생을 가진 전국의 모든 부모들의 큰 관심사이기도 하다.
내가 근무하던 지역은 7개의 인문계 고등학교가 있었는데, 서울대 진학률로 학교 서열이 결정되어 있었다. 내가 근무하던 학교는 지역에서는 가장 서울대를 많이 보내는 학교였다. 그래서, 예비고등학생을 가진 부모들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1년에 2~4명의 학생이 꾸준히 서울대에 진학했는데, 그 점 때문에 성적이 좋은 중학생들이 많이 입학을 했다.
나는 그 학교에 근무하면서, 부모들은 명문대 진학률에 반응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자기 자녀의 수준이 어떤지,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학교가 잘 맞는지에 대한 꼼꼼한 관심을 기울이기 않았다. 물론, 그 중에 그렇지 않은 부모도 있었지만, 100명 중 99명의 부모는 똑같았다. 부모들은 그저 좋은 학교라면, 일제히 아이들을 한 학교에 몰아서 입학시켰다. 마트에서 상품을 고를 때는 꼼꼼히 가격, 양, 품질 등을 비교하며 고르지만, 왜 고등학교를 고를 때는 그런지 이해가 안 되었다. 그저 명문고라고 불리는 학교에 자녀를 진학시키면, 자신의 명예도 함께 올라가는 것처럼 말이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경험한 교사로서, 학교 내부 시스템은 부모의 기대와는 다르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교장을 비롯한 선생님들의 관심은 오직 서울대 진학 숫자에 있다. 그 해에 서울대를 몇 명 보냈는지는 학교의 명예와 결부된 중요한 일이고, 사활을 걸어야 할 중대한 사안이었다. 또한, 이듬해 입학생들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이 선생, 이번에 서울대를 3명은 보내야 되네. 그래야 내년에 더 좋은 아이들을 받을 수 있어.” 입학생들을 잘 키우고 가르쳐서 발전시킨다는 것보다는, 좋은 아이들을 받아야 좋은 대학을 보낼 수 있다는 논리가 더 큰 셈이다.
한 개그 프로그램에서 한 말이 기억난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말은 우리 입시 현실을 빗대는 것 같아 씁쓸하다. 많은 학교들이 좋은 교육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을 잘 가르치겠다는 명분으로 학생들을 모집한다. 그런데, 대부분 인문계 고등학교들은 아이들의 능력을 어떻게 키우겠다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저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을 타이트하게 운영해서, 좋은 결과를 얻겠다는 생각이 대부분이다. 논술, 적성, 면접 등 대학입시에 직결되는 것만을 잘 가르치면 아이들의 능력이 계발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대학을 잘 보내면, 잘하는 학교가 되고, 명문학교가 되는 왜곡된 현실이 숨어 있었다.
‘1명이 주인공이고 99명이 들러리다’라는 말이 현실에 딱 맞는 말이다. 서울대를 가기 위해서는 성적이 좋아야 한다. 하지만, 친구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대 평가 방식에서는 모두가 좋은 성적을 받을 수는 없다. 결국 1등이 있으면, 꼴찌가 있는 법이다. 모두가 노력하지만, 모두가 잘 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중학교에서 아무리 공부를 잘했다고 하더라도, 여러 중학교에서 모인 1등들끼리 경쟁해서 결국 1명만이 고등학교 1등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두가 1등이 되는 방법은 없을까? 학교가 1등만이 아닌 모두에게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는 방법은 없을까? 우선, 내신과 수능 성적만 잘 받아서, 적당히 성적에 맞추어 대학을 진학시키는 상투적인 시스템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학생들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는 노력에서 출발해야 한다. 학생은 누구나 자신만의 관심사와 재능을 가지고 있다. 교사는 학생 내면을 들여다보고, 잠재된 역량이 밖으로 표출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1명이 아닌 모두가 1등이 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학교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시도를 해야 한다. 워낙 학생들마다 관심사가 다르기 때문에, 학교는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 관심사가 같은 학생들끼리 모이도록 해주고, 그 관심사를 공유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대학을 진학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자신의 목표와 진로가 명확하고, 관련 분야의 다양한 활동과 포트폴리오를 통해 대학을 진학하고 있다. 학창시절에 자신만의 강점과 스토리를 발견하고 원하는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있다. 학생들을 이런 열린 방식으로 키우려는 의식이 학교 사회에 확산되어야 한다. 물론, 몇몇 학교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동아리활동이 있다. 동아리는 관심사를 같이 하는 학생들끼리의 모임이다. 물론 과거 동아리활동을 취미활동 정도의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데, 요즘 교육부가 창의적 체험활동을 강조하면서, 동아리 활동은 자율활동, 진로활동, 봉사활동과 더불어 학생들의 창의적인 역량을 끌어내는 중요한 프로그램으로 부각되고 있다. 앞으로 중학교에 ‘자유학기제’가 도입되게 되면, 동아리활동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인문계 고등학교 선생님과 학부모들은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기존의 낡은 시스템을 버려야 모두가 1등이 되는 학교를 만들 수 있다. 동아리활동을 통해 학생들 하나하나를 들여다보고, 개인의 관심사, 진로, 잠재가능성, 꿈 등을 발견하고, 대학 진학과 인생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도록 학교 시스템을 바꾸어 나가야한다.
2013년에 작성된 글임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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